새 땅의 지명에 남은 실향민의 고향
핵심 요약
실향민들은 새 정착지에 고향의 지명을 남기며 단절된 삶을 이어갔다. 미국의 유럽식 지명에는 이주민의 향수와 식민 지배의 흔적이 함께 담겼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토대로 조선인을 사할린 등지의 노동력으로 동원했다.
전쟁과 식민 지배, 생계난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정착한 땅에 익숙한 지명을 새기며 단절된 삶을 이어갔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낯선 공간의 이름으로 남은 것이다. 이런 흔적은 특정 지역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사할린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미국에는 아테네와 베를린, 로마처럼 유럽 도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지역이 존재한다. 영국인이 지배한 북동부 13개 식민지에는 뉴욕을 비롯해 플리머스, 케임브리지, 에식스, 서식스 등의 지명이 자리 잡았다. 프랑스인이 차지했던 중부에는 루이 왕의 이름을 담은 루이지애나가 생겼고, 이 지역의 카운티급 행정구역은 프랑스 수도 파리와 이름이 통하는 ‘패리시’로 불린다.
유럽의 상황이 어두워지고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가 늘면서 이주민의 국적과 지명도 다양해졌다. 독일 출신 이주민의 증가와 함께 미국 내 ‘베를린’은 11곳까지 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반독일 정서가 확산하자 일부 지역은 그 이름을 버렸다. 지명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새 땅을 차지하려는 지배 의지도 섞였고, 유럽식 이름이 늘어난 만큼 원주민의 영역은 줄었다.
한민족의 실향은 식민 지배와 동족상잔, 독재의 파고 속에서 이어졌다. 1930년대 후반 사할린에는 조선인의 ‘아리랑’이 흘렀다. 러일전쟁 뒤 이 섬을 지배한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을 동원했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의 빈농을 병참기지로 강제 이주시킬 근거를 마련했다. 타향에 남겨진 고향의 이름과 노래는 이주의 고통과 귀환의 염원을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