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유일한, 비밀요원으로 조국 광복 꿈꿨다
핵심 요약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은 미국 전략첩보국의 한반도 침투 작전에 ‘에이전트 A’로 참여했다. 기업 활동을 바탕으로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에 자금을 전달하고 비밀 연락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 후 국가 재건에 힘쓰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뒤 1971년 세상을 떠났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은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 전략첩보국이 추진한 한반도 침투 작전의 핵심 요원이었다. 미국은 1944년 재미 한인들을 투입해 일제 통치 아래 있던 한반도에서 무장 유격전과 내부 봉기를 일으키는 ‘냅코 작전’을 마련했다. 유일한은 ‘에이전트 A’라는 암호명으로 경성 침투조를 이끌도록 선발됐다.
냅코 작전에는 모두 18명의 한인이 4개 침투조에 배치됐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의 한 섬에서 시설 폭파와 정보 수집, 인물 포섭, 여론 교란, 연합군 상륙 지원 등에 필요한 특수훈련을 받았다. 잠수정과 항공기를 이용한 침투일은 1945년 8월 18일로 정해졌지만, 일본이 사흘 앞선 8월 15일 항복하면서 실제 작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은 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소년병학교에서 농장 일과 학업, 군사훈련을 병행했다. 미시간대 재학 중에는 3·1운동을 계기로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 참여해 결의문을 작성하고 발표했다. 이후 통조림 사업에 성공했으나 1926년 귀국해 의약품 회사를 세웠고, 회사 수익과 사업망을 독립운동의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했다.
그가 세운 회사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에 비밀 자금을 공급했다. 유일한도 기업인 신분으로 국외를 오가며 자금 전달과 연락 임무를 맡았고, 독립운동가 자녀의 장학금과 민족 교육·언론 기관을 지원했다. 1942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군사조직 맹호군의 창설과 훈련을 주도했다. 광복 후에는 국가 재건에 힘을 보탰으며, 재산을 가족에게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뒤 1971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