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밝힌 덕수궁, 역사와 현대가 겹치는 밤
핵심 요약
덕수궁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9시까지 개방하는 도심 야간 여행지다. 중화전과 전통 전각, 석조전·정관헌·돈덕전이 조명 아래 서로 다른 건축미를 드러낸다. 궁 관람 뒤에는 돌담길과 정동의 대한제국·개화기 역사 현장으로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한여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덕수궁은 별도의 야간 행사를 기다리지 않고 찾을 수 있는 도심 속 밤 여행지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하며 입장은 오후 8시까지 가능하다. 해가 기울 무렵 대한문을 통과하면 조명을 밝힌 궁궐 전각과 고층 빌딩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덕수궁 특유의 야경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대한문과 중화문을 지나면 대한제국의 정전인 중화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처마와 단청의 선과 색이 조명 아래 또렷해진다. 준명당과 즉조당, 석어당, 함녕전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불 밝힌 전각과 어두운 마당, 울창한 나무가 번갈아 나타난다. 1900년 착공해 1910년 준공한 석조전은 밝은 외벽을 드러내며 주변의 전통 전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덕수궁은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살던 사저에서 출발했다. 임진왜란 뒤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가 임시 궁궐로 사용했고, 1611년 광해군 때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이곳을 황궁으로 삼았다. 1907년 순종이 즉위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으며, 고종은 1919년 서거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대한제국 시기 들어선 정관헌과 돈덕전은 전통 건축과 서양식 건물이 공존하는 궁의 성격을 보여준다. 궁을 나선 뒤에는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정동에는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인 구 러시아공사관과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가 모여 있다. 궁궐 안 전각 너머의 빌딩 불빛과 정동의 근대사 흔적은 덕수궁의 밤에 서로 다른 시대가 맞닿은 풍경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