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운, 강요배의 화폭에 흐르다
핵심 요약
강요배의 개인전 ‘소소, 반색’이 서울 학고재에서 회화 28점으로 열린다. 폭포와 파도, 숲의 색채를 통해 더위와 바람, 그늘처럼 보이지 않는 감각을 표현했다. ‘해바라기-쿠르스크’에는 전쟁의 상흔과 생명의 지속성이 함께 담겼다.
제주 자연을 오래 관찰해 온 강요배(74)의 개인전 ‘소소, 반색’이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린다. 자연을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옮기기보다 기억과 상상을 거쳐 새롭게 구성한 풍경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존재와 형태 없이 감각으로만 포착되는 기운을 담은 회화 28점이 전시장에 걸린다.
폭포를 화면 가득 펼친 ‘소서’와 ‘대서’는 거세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을 통해 한여름 더위를 드러낸다. 제주의 거친 파도를 담은 ‘창파’와 ‘영등바람’, 서쪽 하늘의 석양과 구름을 그린 ‘남으로’에서는 바람이 중심에 놓인다. ‘녹음’은 짙은 녹색과 노란 기운이 도는 연두색을 겹쳐 계절이 깊어질수록 무성해지는 잎과 그늘의 감각을 표현했다.
전쟁을 다룬 ‘해바라기-쿠르스크’는 눈 덮인 해바라기 아래 몸을 숨긴 병사들의 비극에서 출발했다. 참상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말라버린 해바라기에 폭력이 남긴 상흔과 이어지는 생명력을 함께 담았다. 과거 동백꽃으로 고향의 역사를 그려낸 방식과 맞닿아 있다. 해바라기밭으로 알려진 쿠르스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가 된 현실도 작품의 배경을 이룬다.
강요배는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도 제주에 살며 터전의 풍광을 그려왔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의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을 통해 제주 4·3의 역사를 기록한 민중미술 1세대로, 옥관문화훈장과 이인성미술상, 이중섭미술상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대상을 오래 보고 마음속에 담아둔 뒤 자신만의 풍경으로 길어 올리는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