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돌봄의 설계, 노동의 이름을 얻다
핵심 요약
살림과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과정이 ‘기획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조명됐다. 책은 맞벌이 부부를 넘어 싱글맘과 전업주부, 가족 돌봄자와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다룬다. 끝없고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며 돌봄에 관한 논의의 범위를 넓혔다.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신간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통해 살림과 돌봄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과정을 ‘기획 노동’으로 조명했다. 설거지나 청소처럼 결과가 드러나는 행위뿐 아니라 가족의 필요를 미리 살피고 정보를 모아 판단하며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도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노동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웨일북이 펴낸 책은 256쪽이며 가격은 1만8000원이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옷을 사고 작아진 옷을 정리하는 일, 어린이집과 학원을 알아보고 선택하는 일, 병원을 예약하거나 가족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가사 분담표에서 빠지기 쉽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역할을 협상할 어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은 기획 노동의 범위를 맞벌이 부부의 가사·양육 분담에 한정하지 않고, 사적 영역에서 대가 없이 이뤄지는 살림과 돌봄 전반으로 넓힌다.
저자는 싱글맘과 전업주부, 부모를 돌보는 자녀, 장애 아동의 어머니, 장애 당사자 등 21명을 인터뷰했다. 가족이 여럿이어도 부모 돌봄의 중심 역할이 딸, 특히 미혼인 딸에게 향하는 현실과 발달장애 아동을 돌보는 여성이 전문가도 온전히 제시하지 못하는 경로를 직접 설계해야 하는 상황을 살핀다. 기획 노동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 된 배경에는 살림과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 여겨온 고정관념이 자리한다.
기획 노동은 끝이 없고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꺼지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나 계속 작동하는 백그라운드 앱에 비유된다. 돌봄을 사랑과 책임, 본능의 영역으로만 보면 예측과 정보 수집, 의사결정은 저절로 이뤄지는 일처럼 취급되기 쉽다. 반면 회사에서 유사한 환경 분석과 공정 설계, 위험 관리는 전문 역량으로 인정된다. 책은 이름 없던 노동을 가시화하고 논의의 대상을 다양한 돌봄 주체로 확장하며, 이후 논의를 이어갈 과제를 독자에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