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 지원, 긴 심사와 숨은 문턱
핵심 요약
임신 초기 남편에게 폭행당한 피해자는 긴 심사 기간 탓에 지자체 긴급복지로 치료비를 마련했다. 경찰청 분석에서 기금 지급까지 치료비는 평균 80.1일, 생계비는 평균 53.2일이 걸렸다. 안내된 요건 외의 심사 조건까지 적용되면서 지원에서 탈락하는 피해자도 발생하고 있다.
인천에 사는 30대 주부 양서정(가명)씨는 지난해 7월 임신 초기에 남편에게 폭행당해 하혈했지만 치료비가 부담돼 병원 방문을 망설였다. 담당 경찰관이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치료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신청부터 심사·지급까지 한두 달 이상 걸리는 절차가 걸림돌이 됐다. 경찰은 결국 지방자치단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연결해 급한 치료비를 마련했다.
경찰청이 2024년 1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접수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신청을 분석한 결과, 신청 후 지급까지 치료비는 평균 80.1일, 생계비는 평균 53.2일이 소요됐다. 법무부가 2024년 신청 건을 자체 분석한 수치는 치료비와 생계비 모두 평균 29일이었다. 법무부는 경찰 수사 단계에 있는 사건도 지원센터를 통해 최대한 접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가해자가 국가에 낸 벌금의 8%를 떼어 조성한 재원 등을 바탕으로 한다. 올해 전체 1027억원 가운데 법무부에 567억원(55%), 경찰청에 56억원(6%)이 배정됐다. 피해자는 법무부 배정 예산에서 치료비를 연간 최대 1500만원, 생계비를 최장 6개월 동안 월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행정안전부 소속 경찰의 수사 단계에 있으면 심사 대상에서 빠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경찰 내부의 판단이다.
지급 속도뿐 아니라 심사 기준도 피해자에게 문턱이 되고 있다.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치료비의 경우 범죄로 5주 이상 치료가 필요할 때, 생계비는 범죄로 생계 지원이 필요할 때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돼 있다. 실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법무부 산하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는 이 밖의 조건도 함께 살핀다. 지난해 4월 충북 청주의 가정폭력 피해자는 치료비를 신청했지만, 함께 사는 가해자에게 지원금이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됐다. 긴급한 비용이 필요한 피해자가 지급 지연과 별도 심사 조건을 함께 넘어야 하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