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려·조선을 잇는 위구르의 이동사
핵심 요약
위구르인은 몽골 초원에서 제국을 세운 뒤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며 실크로드의 주요 세력으로 활동했다. 발해 유적과 설손·설장수 가문의 행적은 위구르와 한반도의 교류를 보여준다. 오늘날 위구르 명칭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틀은 청의 정복과 20세기 민족 재편을 거쳐 형성됐다.
중국 영토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는 동서 문명이 오간 실크로드의 역사가 축적돼 있다. 위구르인은 튀르크어족 부족 연합에서 출발해 몽골 오르혼강 유역에 위구르 제국을 세웠고,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뒤에는 발해와 교역하거나 고려에 정착하며 한반도와도 관계를 맺었다.
744년 등장한 위구르 제국은 757년 당의 안사의 난 진압에 참여했고, 제3대 뵈귀 카간은 마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840년 제국이 무너진 뒤 일부 세력은 투르판에 고창 위구르를 세워 마니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국가를 일궜다. 이후 몽골 제국에 일찍 복속한 위구르인들은 행정과 문서를 담당했으며, 위구르 문자는 몽골 문자 창제의 토대가 됐다.
한반도와의 접점은 유적과 인물에서 확인된다. 2014년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성터에서는 위구르식 격자무늬 토기와 사각형 제단이 발견됐다. 방사성탄소연대는 약 750년을 가리키며, 상인 집단이 머물면서 인삼과 모피 등을 거래한 흔적으로 해석된다. 고려에 망명한 설손은 고창백에 봉해졌고, 아들 설장수는 명나라를 여덟 차례 오가며 조선 건국 승인과 세자 책봉 통보를 맡고 초기 역관 제도의 기반을 다졌다. 이 계보는 경주 설씨로 이어졌다.
현재의 지역 질서는 1755년 청의 중가르 정복과 주민 이주를 거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카라발가순과 투르판 유적 조사를 통해 옛 제국이 재조명됐고, 1921년 타슈켄트 회의에서 신장 주민의 민족 명칭으로 위구르가 채택됐다. 이들은 고대 위구르어와 다른 카를루크 계통 언어를 사용했다. 지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됐고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로 확정됐다. 위구르의 역사는 중앙아시아와 한반도를 연결한 교류의 흐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