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리츠가 뒤집어 세운 회화의 관습
핵심 요약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 46점을 모은 회고전이 서울 세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거꾸로 된 엘케의 초상부터 과거 작품을 재해석한 연작까지 시대별 실험을 살펴볼 수 있다. 손가락과 휠체어, 전사 기법 등 회화의 관습을 흔든 제작 방식도 전시의 핵심이다.
지난 4월 작고한 독일 예술가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작품 세계를 되짚는 회고전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개막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생애 마지막 ‘골드 페인팅’ 연작까지 회화와 드로잉, 조각 46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내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2007년 이후 19년 만이며,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의 출발점은 형상을 분할한 1966년작 ‘나뉜 소 두 마리 I’다. 이 실험은 1969년 시작된 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확장됐다. 바젤리츠는 부인 엘케의 얼굴을 위아래로 뒤집어 익숙한 대상을 낯선 이미지로 바꾸고, 가족뿐 아니라 독일을 상징하는 독수리도 같은 방식으로 다뤘다. 엘케 연작에는 부인의 모습과 작가의 내면이 함께 투영된 이중 초상의 성격이 담겼다.
뒤집기의 대상은 화면 방향에 머물지 않았다. ‘옛날에’(1992년)에서는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잭슨 폴록의 방식을 재해석했고, ‘에켈리’(2004년)에서는 에드바르 뭉크의 말년 사진에 나오지 않는 하반신과 신발을 상상해 완성했다. ‘삶의 이름으로 I’(1998년)는 냉전기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미지를 꿈속 장면처럼 변형했으며, 2000년대 ‘리믹스’ 연작에서는 자신의 1960년대 ‘영웅’ 연작을 다시 꺼내 새롭게 그렸다.
재료와 제작 방식에서도 관습을 거스른 흔적이 선명하다. 초기작 ‘손가락 그림-날개’는 붓 대신 물감을 묻힌 손가락으로 제작됐다. 노년기의 엘케 초상 ‘그 시절의 토착 예술’에는 바닥에 놓은 캔버스 위로 휠체어와 보행기를 끌고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다. 발자국을 내거나 팔레트 나이프만 사용한 작품, 원본 이미지를 다른 캔버스에 찍은 전사 작업도 전시된다. 끝부분의 ‘골드 페인팅’은 황금빛 배경과 초상을 결합해 마지막까지 반전을 시도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