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의 로망, 파리의 디지털 결투로 이어지다
핵심 요약
백여 나라에서 모인 2000여 명의 게임 고수가 파리 e스포츠 월드컵에서 실력을 겨루고 있다. 놀이터의 무술 흉내는 오락실 대전격투 게임을 통해 연습과 승부의 문화로 바뀌었다. 영화에서 시작된 무술의 로망은 디지털 경기와 국제 e스포츠 무대에서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백여 나라의 게임 고수 2000여 명이 실력을 겨루는 e스포츠 월드컵이 펼쳐지고 있다. 수천 시간 동안 갈고닦은 손놀림으로 결정적인 한 수를 만들어내는 선수들과 이에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은, 각국 무술가들이 한곳에 모여 승부를 벌이던 영화 ‘용쟁호투’의 무대를 디지털 공간에 옮겨 놓은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대전격투 게임의 승부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무술 동작을 흉내 내던 놀이와 달랐다. 전자오락실에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널리 퍼지자 아이들은 동전을 걸고 서로의 실력을 겨뤘고, 반복해서 연습한 사람이 실제 승부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오랜 수련 끝에 주변의 인정을 받는 ‘고수’가 등장하는 장소로 오락실이 자리 잡으면서 화면 속 발차기와 기술은 하나의 온전한 무술처럼 받아들여졌다.
무술을 향한 선망은 영화에서 출발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은 이소룡을 동경해 그의 동작을 따라 하며 성장하고, 작품 후반 성룡이라는 새로운 무술 스타가 등장하는 시점에 자신의 성장기를 마무리한다. 당시 동네 아이들에게도 무술영화 주인공의 몸짓을 따라 하고 새로운 기술명을 외치며 손발을 휘두르는 일은 놀이터의 주요 놀이였다. 1980년대를 풍미한 무술영화가 ‘영웅본색’ 계열의 누아르에 자리를 내준 뒤에도 이런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멀어진 무술의 로망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철권’을 거쳐 1990년대의 게임 문화로 이어졌고, 반세기가 지난 파리의 국제 대회에서 현실의 경쟁으로 확장됐다. 고된 수련을 거치면 고수가 될 수 있다는 무협의 약속도 선수들의 정교한 플레이를 통해 다시 확인된다. 손과 눈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은 세대까지 중계 화면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은 무술을 향한 오래된 동경이 세대와 매체를 넘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