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운 오리, 지나간 시간 끝에서 걷다
핵심 요약
우은주의 시 ‘오리와 무중3’은 마음을 먹어 없애는 오리를 통해 지나간 시간을 형상화한다. 오리는 무거움을 견디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호수와 지하 카페를 오간다. 작품은 모든 것이 과거가 되는 조건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다시 걷는 장면으로 끝난다.
우은주의 시 ‘오리와 무중3’은 과거에 머물던 오리가 마음을 조금씩 먹어 없애고 다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휴일마다 호수 벤치에 앉은 오리는 무엇을 떠올리든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사실과 마주한다. 마음의 조각을 호수에 던지자 곳곳에 생긴 파문이 천천히 사라지고, 아물어 가는 원 안에서는 영원을 살고 떠난 짧은 순간처럼 오리의 마음이 빛난다.
조금만 떼어 먹었는데도 저녁이면 마음은 남지 않아, 누가 기분을 물어도 오리는 답을 찾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어둠을 밝히고 두고 온 것을 되짚을 때에야 먹었던 마음이 되살아난다. 낮 동안에는 지하 카페에 앉아 인형의 태엽을 감고, 채워진 시간을 살아 보지만 모든 행동은 곧 과거가 된다. 오리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취하고, 발등에 돌 두 개를 올린 듯 위태롭고 무거운 상태를 견딘다.
문을 여는 아침마다 무중의 불타는 미래가 바깥에 놓여 있지만, 오리는 그것이 자기 몫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삶이 무게를 따라 추락하는 일이라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다는 마음도 드러낸다. 들것에 실린 채 스쳐 가는 빛을 바라본 뒤 다시 휴일 저녁의 호수 벤치에 앉아 낯선 목소리가 지나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먹다 남긴 마음은 탁자 위에서 마르고 있을 대상으로 제시된다.
마지막에 오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촘촘히 무너지는 빛을 밀치며 걷는다. 무엇을 하더라도 지나간 일이 된다는 조건은 달라지지 않지만, 더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정은기 시인은 이 걸음을 무언가를 이겨 낸 결과라기보다 온전히 가벼워진 뒤에 시작되는 움직임으로 읽었다. 우은주는 2019년 ‘황해문화’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은 2025년 걷는사람에서 출간된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