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고도 보는 소리, 사회의 위계를 묻다
핵심 요약
김 작가는 ‘MMCA×LG올레드 시리즈 2026’에서 소리와 사회적 권력의 관계를 탐구한다. 수화와 음표, 기호를 활용한 드로잉과 영상·음악으로 소리를 시각 언어로 바꾼다. 농인으로서 겪은 소통의 긴장과 구어 중심 사회의 위계가 작품 세계의 핵심을 이룬다.
농인 작가 김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에서 한국 개인전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을 선보인다. LG전자의 중장기 후원으로 매년 열리는 ‘MMCA×LG올레드 시리즈 2026’의 작가로 선정된 그는 지난달 30일 개막식에 맞춰 한국 언론과 만났다. 이번 전시는 소리를 청각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권력과 제도, 사회적 규범의 문제로 확장한다.
전시장에는 음표와 악상, 수화와 각종 기호를 활용한 흑백 드로잉이 펼쳐진다. 영상 속에서는 전시 제목에 포함된 ‘fight’와 ‘Rock’ 같은 영어 단어가 행성처럼 떠다니고, 벽면의 형상은 수직과 사선 방향으로 뻗는다. 바닥에는 먹물이 든 주머니가 터진 듯한 이미지가 번져 있다. 음악까지 더해진 작품들은 언어와 소리를 시각적 형식으로 전환하고 퍼포먼스와 영상으로 넓혀 온 작업의 흐름을 보여준다.
김 작가는 2008년 베를린의 입주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사운드를 작품의 요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것은 상상의 음향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소리와 그로 인해 생기는 반응이다. 식당에서 유리잔이 떨어지면 청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고, 농인도 그 움직임을 통해 소리의 발생을 감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리를 듣는 기능이 없어도 소리에 기반한 사회의 작동 방식과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오렌지카운티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농인인 첫째 딸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하려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 아래서 자랐다. 둘째 딸인 그 역시 농인으로 태어났고, 부모는 영어와 수화를 함께 익혀야 했다. 미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로체스터공과대학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뒤 뉴욕 시각예술학교 석사 과정에서 미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수 청인의 구어가 수어보다 높은 위계를 갖는 환경에서 느낀 긴장은 선명한 흑백으로 표현됐으며, 최근에는 모호함을 받아들이며 색채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2025년 휘트니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뉴욕, 베를린, 시드니 등지로 활동 무대를 넓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