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 원정비, 350년 넘게 전하는 예학자 김장생의 학맥
핵심 요약
충남 논산 돈암서원에 있는 원정비는 1669년 문하생들이 예학자 김장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에는 송시열, 송준길, 김만기 등 당대 최고 권력자와 후손의 이름이 새겨져 학맥의 계보를 보여준다. 비석은 현재 야외에 노출돼 훼손이 진행 중이며,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돈암서원. 입덕문을 지나 양성당 앞에 서면 백대리석으로 만든 나지막한 비석 하나가 눈에 띈다. 비신 첫머리에는 '연산현돈암서원비기'라는 굵은 글씨가 새겨져 있고, 현종 10년인 1669년에 세워진 이 비석은 돈암서원 원정비로 불린다. 건물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이 비석은 예학자 김장생(1548~1631)을 기리기 위해 문하생들이 세운 것으로, 비문은 스승이 세상을 떠난 지 38년 만인 1669년 8월에 완성됐다.
비문 첫 문장은 '사계 문원공 김선생이 숭정 신미년 8월에'로 시작해 김장생의 사망일을 적었고, 뒷면 끝에는 '기유팔월'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김장생과 아들 김집을 '성덕각이이이소위학위교자일야(成德各異而所以爲學爲敎者一也)'라며 '덕은 달라도 학문과 가르침은 하나'라고 평가했다. 비문을 지은 송시열은 '문인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감춘추관사 세자부'라는 정1품 직함을, 글씨를 쓴 송준길은 '문인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성균관좨주 세자찬선'이라는 정2품 직함을 앞세웠다. 전서체 표제를 쓴 김만기는 '문원공증손 통정대부 홍문관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으로, 관직보다 혈통을 먼저 적었다.
김장생은 구봉 송익필과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혔으나,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정묘호란을 겪으며 관직보다 고향에서의 강학을 택했다. 그의 아들 김집(호 신독재)은 아버지의 예학을 제자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했고, 그 문하에서 송시열과 송준길이 배출됐다. 송준길은 당대 명필로, 그의 글씨는 '금석문 글씨 가운데 백미'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만기의 동생 김만중은 훗날 한글 소설을 지어 조선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서원은 원래 지금 위치에서 서북쪽 1.5km 떨어진 숲말에 있었으나, 잦은 수해로 1880년 현재 위치로 옮겨오면서 비석도 함께 이전됐다.
이 비석은 세월의 흔적을 피하지 못했다. 향토 기록에 따르면 대리석 특성상 풍우보다 동리 아이들의 손길에 훼손된 부분이 많으며, 실제로 비신 곳곳에 손자국처럼 매끈하게 닳은 부분과 잔 긁힘이 남아 있다. 현재 야외에 노출된 상태로 보호각이나 강화유리 같은 장치가 없어, 지역에서는 추가 마모를 막기 위한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정비는 단순히 한 예학자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학문과 가르침이 제자와 후손을 통해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계보도로서 의미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