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굴 학살터, 국가유산 등록 절차 돌입
핵심 요약
제주 4·3 당시 주민 11명이 희생된 다랑쉬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됐다. 다랑쉬굴은 집단 희생의 현장이자 1991년 유골 발견을 통해 진상규명 운동을 촉진한 공간이다. 다랑쉬굴과 만서정은 30일간 의견 수렴과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가 확정된다.
제주 4·3 당시 주민 11명이 목숨을 잃은 다랑쉬굴이 국가가 보호하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12일 ‘제주 4·3 다랑쉬굴 은신처 학살터’를 독립운동가 회당 장석영의 경북 칠곡 가옥인 만서정과 함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두 유산은 30일 동안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 여부가 결정된다.
1948년 10월 정부는 제주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 들어가는 주민을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초토화 작전이 이어지자 섬 동북쪽 한라산 기슭 중산간에 살던 종달리·하도리 주민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다랑쉬오름 인근 굴에 몸을 숨겼다. 그해 12월18일 굴을 찾아낸 군경 토벌대는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들여보냈고, 아이를 포함한 11명이 질식해 숨졌다.
제주 4·3은 1948년 4월3일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로 촉발돼 섬 전역으로 번졌다. 다랑쉬굴에서 벌어진 참극은 이후 40년 넘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1991년 3월 제주4·3연구소가 동굴 안에서 희생자 유골과 솥, 항아리 등을 발견하면서 사건의 실상이 알려졌고, 이 발견은 제주 4·3 진상규명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됐다.
다랑쉬굴은 초토화 작전을 피해 들어간 주민들이 토벌 과정에서 집단 희생된 현장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진상규명을 촉진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피난처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는 점도 등록 예고의 근거가 됐다. 함께 예고된 만서정은 1919년 3·1운동 직후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한 파리장서운동의 주역 장석영(1851~1926)의 자취가 남은 장소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