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런의 ‘오디세이’, 영웅 신화를 인간의 서사로
핵심 요약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172분의 현대적 서사로 재구성했다. 기억과 시간을 교차한 세 파트가 오디세우스의 귀환과 가족 상봉으로 모인다. 결함 있는 영웅과 주체적인 페넬로페를 통해 고전 신화의 인물상을 새롭게 해석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오디세이’는 약 3천 년 전 쓰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172분의 현대적 이야기로 다시 구성했다. 방대한 원전을 단순히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물의 기억과 선택을 중심으로 서사를 압축해 고전 각색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뉘며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과정과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며 전설을 접하는 과정이 두 갈래로 펼쳐진다. 시간과 기억은 교차 편집을 통해 뒤섞이고, 하늘·바다·육지의 시점도 함께 활용된다. 마지막에는 오프닝의 음유시인과 연회 장면으로 되돌아가 귀환과 가족의 상봉을 연결한다.
각색의 중심에는 전쟁 영웅을 결함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놓였다. 오디세우스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피하지 못하고, 신의 법을 어긴 대가와 전쟁의 죄책감에 짓눌린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오펜하이머’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결점을 부각한 접근과 맞닿는다. 흑인 배우가 맡은 일란성 쌍둥이 설정의 헬레네, 트로이 목마의 미끼 시논, 동양인 부하 등 다인종·트랜스젠더 캐스팅도 서사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배치됐다.
페넬로페의 변화 역시 이번 재해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남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왕비가 아니라, 20년 동안 축적한 지혜와 경험에도 왕이 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강한 욕망과 주체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재혼 압박과 모멸을 견디며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소년에서 남성으로 성장하는 동력도 제공한다. 영화는 이처럼 영웅의 귀환뿐 아니라 책임과 욕망, 가족의 변화를 함께 엮어 신화를 현대적으로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