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런의 ‘오디세이’, 실사로 되살린 아날로그의 힘
핵심 요약
‘오디세이’는 실제 바다와 배우의 체격 차이, 원근법을 활용해 거인족 전투를 실사로 구현했다. 놀런 감독은 전작에서도 트럭과 여객기, 대규모 옥수수밭을 직접 촬영에 활용했다. AI 생성물이 범람하는 환경에서 실물의 질감과 인간의 손길을 중시하는 흐름이 힘을 얻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컴퓨터그래픽과 인공지능 생성물에 의존하지 않는 실사 촬영으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칠리아 인근 섬의 실제 바다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고, 거인족 전투에는 키 2m가 넘는 남자 배우들과 130㎝대 스턴트우먼을 함께 배치했다. 인물 간 크기 차이는 원근법 착시를 활용해 화면에 구현했다.
놀런은 이전 작품에서도 현실의 공간과 사물을 촬영 현장에 직접 가져오는 방식을 고수했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시카고 도심에서 18륜 대형 트럭을 뒤집었고, ‘테넷’ 촬영 때는 퇴역한 보잉 747 여객기를 구입해 건물과 충돌시켰다. ‘인터스텔라’를 위해서는 60만 평 규모의 땅에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배우들에게도 그린스크린 앞에서 장면을 상상하기보다 실제 대상을 보고 반응하라고 주문한다.
영화 제작 기술의 흐름은 한 세대 전과 크게 달라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90년대 초 ‘쥬라기 공원’을 제작하며 기계 장치와 모형만으로 공룡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CG를 도입했다.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시 관객에게 강렬한 충격을 줬다. 그러나 숏폼 영상과 AI 이미지, 딥페이크가 일상적으로 쏟아지는 지금은 가상의 빛과 질감, 물리 법칙을 벗어난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도 커졌다.
3000년 전 그리스 영웅의 여정을 그린 ‘오디세이’는 24시간 상영하는 아이맥스관에서도 표를 구하기 어려울 만큼 관객의 관심을 받고 있다. 놀런은 AI 생성 콘텐츠를 ‘AI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AI 작곡이 흔해진 뒤 LP 음반을 찾고, AI 그림이 넘쳐나는 가운데 유화의 질감에 주목하며, 인간의 손으로만 제작했음을 내세운 ‘No-AI’ 표식이 가치를 얻는 현상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될수록 실제 사물과 인간의 고민이 담긴 창작물을 찾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