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의 그늘에서 태어난 서구의 자유
핵심 요약
올랜도 패터슨은 서구의 자유가 노예제와의 대조와 긴장 속에서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아테네의 채무노예제 폐지와 로마의 노예 해방 제도는 자유의 확대와 노예제 유지가 맞물린 과정을 보여준다. 중세에는 기독교의 구속 관념과 계층별 자치 요구를 통해 자유의 가치가 널리 확산됐다.
서구의 자유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이나 근대 시민혁명만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와의 긴장 속에서 형성됐다는 역사사회학적 분석이 국내에 소개됐다. 올랜도 패터슨 미국 하버드대 존 카울스 사회학 교수는 1991년 출간한 『자유의 역설』에서 자유민이 노예와 자신을 구분하고, 지배층이 저항과 정치·경제적 필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유의 가치가 구체화됐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8~6세기 아테네에서는 빚을 갚지 못한 빈농이 채무 노예가 되거나 국외로 팔리는 일이 흔했다. 자유민도 노예로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와 갈등이 커지자 집정관 솔론은 기원전 6세기 채무노예제를 폐지했지만, 전쟁포로나 외부인을 노예로 삼는 제도는 남겼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뒤 시민들은 공직자 선출과 민회·재판 참여의 자유를 누렸고, 그 기반에는 외부에서 늘어난 노예 노동력이 자리했다.
로마는 노예 해방을 제도화하며 자유를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수공업과 상공업 등에서 활동한 노예는 주인의 동의를 얻어 해방될 수 있었고, 능력 있는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옛 주인과 경제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편이 유리하기도 했다. 해방노예의 자녀에게는 완전한 시민권이 주어졌다. 자유를 향한 노동과 충성을 유도한 해방 제도는 노예제를 약화하는 동시에 유지하는 모순적 장치였고, 자유라는 관념을 로마 시민 사이에 확산시켰다.
중세에는 기독교의 구속 개념이 자유를 보편적 구원의 언어로 바꿨다. 원죄를 지닌 인간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해방된다는 관념 아래 농노는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고, 봉건 영주는 국왕의 간섭을 피하려 했으며, 도시는 영주의 지배에 맞서 자치권을 요구했다. 책은 사료와 그리스·로마 희곡, 철학·신학 및 연구 성과를 엮고 71쪽의 주석을 붙여 이러한 역설을 논증한다. 김혁이 번역하고 글항아리가 펴낸 이 책의 원제는 『Freed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