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본 전통사회의 여름나기와 쉼
핵심 요약
전통사회 사람들은 신분과 생활에 맞는 방식으로 여름철 휴식을 누렸다. 관료는 휴일과 휴가를 이용했고 선비는 독서했으며 농민은 호미씻이를 열었다. 여름의 쉼은 제도적 휴식과 학문, 공동체 활동이라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록됐다.
폭염 속에서 전통사회 사람들은 신분과 생활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휴식을 누렸다. 관료는 정해진 휴일과 사유별 휴가로 공무를 쉬었고, 선비는 무더위에도 독서와 교유를 이어갔다. 농민은 농사일이 한고비를 넘긴 뒤 냇가에서 호미를 씻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다.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 일기인 <쇄미록>과 근대 기록 <해주일록> 등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고려시대 관료에게는 매월 1일과 8일, 15일, 23일 등 약 7일 간격으로 하루를 쉬는 ‘칠가’가 있었다. 본인이 병들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먼 곳의 부모를 찾아뵙거나 부모 묘를 돌볼 때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와 상례, 제사, 질병, 부모 봉양을 사유로 한 ‘급가’가 운영됐다. 세종은 젊은 문관이 일정 기간 공무를 면제받고 독서와 연구에 집중하는 ‘사가독서제’도 시행했다.
선비에게 책 읽기는 여름을 보내는 일상의 한 방식이었다. 남붕(1870∼1933)은 1932년 음력 6월 25일 중복에 새벽부터 <주자서절요>를 외우고 명나라 사람의 시를 읽었다고 <해주일록>에 적었다. 심한 병이 들지 않는 한 여름에도 베개에 기대지 않고 공부했다는 내용도 남겼다. 농민들은 마지막 김매기가 끝나면 ‘호미씻이’를 열어 냇가에 씻은 호미를 걸어두고 하루 또는 며칠 동안 함께 먹고 쉬었으며, 경북 북부에서는 이를 ‘풋굿’이라고 불렀다.
오희문(1539∼1613)이 남긴 <쇄미록>에는 1600년 음력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즐긴 장면이 담겼다. 그는 농사일을 마친 사람들이 호미를 씻고 쉬는 잔치라는 설명을 들은 뒤, 일하는 이들이 한 차례 쉬며 노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취지의 생각을 기록했다. 전통사회의 쉼은 관료에게 제도적 휴식과 학문의 시간이었고, 선비에게 독서와 교유의 시간이었으며, 농민에게는 함께 먹고 즐기는 공동체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