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영화인·여성 등 독립유공자 283명 포상
핵심 요약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283명이 건국훈장·건국포장·대통령표창을 받는다. 직산 광산의 만세 시위를 이끈 김영호·김세철·남기석 선생이 포상 대상에 포함됐다. 영화인 김덕린 선생과 여성 계몽 및 임시정부 지원에 힘쓴 최준례 여사의 공적도 인정됐다.
국가보훈부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283명을 포상한다. 포상 대상 가운데 65명에게 건국훈장, 29명에게 건국포장, 189명에게 대통령표창이 수여된다. 이번 대상자는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와 ‘범죄 인명부’ 등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하고 현지 조사를 벌여 발굴했다. 문화예술계 인물과 여성, 노동자 등 그동안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인사들도 명단에 포함됐다.
김영호·김세철·남기석 선생은 일제강점기 충남 천안의 직산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다. 세 사람은 1919년 3월 동료 광부 100여 명을 이끌고 인근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만세 시위를 주도했으며, 일본 헌병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했다. 노동 현장에서 조직된 독립운동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이 이번 포상을 통해 공식적인 공적 평가를 받게 됐다.
김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김덕린 선생도 포상 대상에 올랐다. 임시정부 외무총장 김규식 선생의 처조카인 그는 1924년 무렵 중국 상해에서 김규식이 운영한 민족교육기관 남화학원에 다니며 항일의식을 키웠고, 이후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한 1930년대에는 항일의식을 일깨우는 여러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불렸다. 그의 활동은 자유와 평화를 염원한 한국과 중국 국민에게 용기를 준 공적으로 평가됐다.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여사는 1904년 결혼한 뒤 남편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황해도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려고 안악사건을 꾸며 김구 선생을 체포하자 4년 동안 옥바라지했으며, 안악군 안신여학교 교사로 여성 계몽 활동에도 힘썼다. 1920년 중국 상해로 망명한 뒤에는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하던 남편을 지원했고, 일본 당국이 ‘불온한 조선인’으로 지목해 감시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독립운동가를 계속 발굴해 선열의 희생정신이 국민과 미래세대에 기억되고 계승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