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꽃을 빚다…백화주의 현대적 귀환
핵심 요약
여러 계절의 꽃을 모아 향을 더한 백화주가 현대 양조 기술을 통해 새롭게 계승되고 있다. 조선시대 문헌의 제조법과 김제 학성강당의 약 250년 가양주 전통이 백화주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현대 제품의 확산을 위해서는 꽃향기의 균형과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여러 계절에 피는 꽃을 모아 향을 입힌 전통주 백화주가 현대 양조 기술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화의 ‘백’은 꽃 100종만을 가리키기보다 수많음과 온전함을 뜻한다. 꽃의 수보다 채취 시기와 건조법, 배합량을 세심하게 조절해 여러 향이 층을 이루도록 하는 술이다.
1810년 무렵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는 겨울 매화와 동백부터 이듬해 가을 국화까지 꽃을 모아 그늘에 말린 뒤 음력 9월 9일 술을 빚는 방법이 담겼다. 국화를 중심에 두고 복숭아꽃·살구꽃·연꽃·구기자꽃·냉이꽃 등은 넉넉히 썼지만, 독성이 있다고 본 철쭉꽃·옥잠화·싸리꽃은 제외했다. ‘규곤요람’을 비롯한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도 서로 다른 백화주 제조법이 남아 있다.
전북 김제 성덕면 학성강당에서는 약 250년 전부터 백화주와 백초주, 두 술을 아우른 백초화주를 가양주로 빚어왔다. 집안의 13대조 김호의가 해마다 섣달에 백화주나 백초주를 마련해 제사와 손님맞이에 쓰라는 유훈을 남긴 데서 시작된 전통이다. 판매용이 아닌 특별한 날의 술로 소량 생산됐으며, 현재 전해지는 규모는 쌀 한 가마로 연간 약 60병이다.
현대 제품도 백화주의 발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지평주조는 2022년 ‘푼주 백화’를 선보인 데 이어 2026년 3월 말린 매화 꽃잎 100장으로 빚은 14도 ‘지평백화’를 한정 출시했다. 춘천 지시울양조장의 18도 ‘화전일취18 백화’에는 직접 기르고 채취한 모란·매화·복숭아꽃·국화·장미·동백·연꽃·진달래·라벤더 등 22종이 들어간다. 꽃향기의 균형과 일정한 품질을 확보하는 양조 기술은 백화주가 현대 식문화와 K-리큐르로 자리 잡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