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치안 불안이 바꾼 중남미의 선택
핵심 요약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우파 후보가 잇따라 집권하며 블루 타이드가 확산했다. 원자재 수입을 기반으로 복지를 확대했던 좌파 정권은 가격 급락과 산업 구조의 한계로 경제 위기를 맞았다. 인플레이션과 빈곤, 치안 악화, 부패에 대한 불만이 보수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페루 대선에서 우파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51)가 승리하며 중남미의 보수화 흐름이 한층 뚜렷해졌다. 최근 열린 취임식에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을 비롯한 우파 정상들이 대거 참석했다. 볼리비아와 코스타리카에서도 우파 후보가 대권을 잡으면서 보수 세력의 연쇄 집권을 뜻하는 ‘블루 타이드’가 지역 정치의 중심 현상으로 떠올랐다.
블루 타이드에 앞서 중남미를 장악한 흐름은 온건한 좌파 정권의 확산을 가리키는 ‘핑크 타이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집권한 좌파 정부들은 원유와 구리, 철광석 등 원자재 수출로 확보한 재원을 복지와 분배에 투입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부는 토지 재분배와 무상 교육·의료를 추진했고, 브라질은 빈민 생활비와 아동 보호 정책을 시행했다. 아르헨티나도 주요 산업 국유화와 서민 보조금 지급에 나섰다.
이 같은 정치 지형의 배경에는 미국의 오랜 중남미 개입이 자리한다. 1823년 먼로주의를 내세운 미국은 20세기 초 국제 경찰 역할을 명분으로 개입 범위를 넓혔고, 냉전기에는 좌파 정권의 등장을 적극 견제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를 고립시키고 1973년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우익 세력을 지원했다. 그러나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해지자 서민과 원주민의 불만이 좌파 연쇄 집권으로 이어졌다.
핑크 타이드 정부는 초기 빈곤율을 낮췄지만 원자재 의존을 벗어날 생산성 높은 산업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2010년대 중반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자 복지 재원이 흔들렸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 속에 국민 90% 이상이 빈곤층으로 추락했으며 600만명 이상이 국외로 떠났다. 아르헨티나 역시 극심한 물가 상승을 겪었고 치안 악화와 정치권 부패까지 겹쳤다. 이런 불만 속에서 2023년 밀레이가 복지 축소와 규제 완화, 공공 부문 감축을 내걸고 당선됐다. 새 우파 정부들이 빈곤과 치안 문제를 해결할지가 블루 타이드의 지속성을 가를 핵심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