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과 재의결로 다져진 제헌기 협치
핵심 요약
제헌국회는 대통령의 거부권 14건 가운데 12건을 재의결하며 높은 자율성을 보였다. 지방자치법 논의에서는 자치 원칙과 신생 국가의 취약한 현실을 조정하는 타협이 이뤄졌다. 대통령과 국회는 반복적인 협의와 설득을 통해 국가 제도의 기틀을 함께 마련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활동한 제헌국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14차례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는 이 가운데 12건을 다시 의결했다. 거부권과 재의결이 반복됐지만 이는 일방적인 국정 운영이나 단순한 권력 충돌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통령과 의원들은 신생 국가에 필요한 제도를 놓고 논의를 거듭하며 상대를 설득하고 절충점을 찾았다.
지방자치법안은 당시의 논의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방자치 관련 헌법 조항은 1948년 7월 1일 이의 없이 통과됐지만, 중앙집권적 통치를 선호한 대통령은 관련 법안에 세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가 지방자치법 제정 전까지 적용할 임시 지방행정조직법안을 내놓자, 국회에서는 시장과 도지사를 내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아래 두는 조항을 놓고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1949년 3월 9일 통과된 지방자치법안은 지방자치 시행을 미루는 내용을 담았다. 의원들은 지방자치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국가가 국내의 물리력을 충분히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국 단위 선거보다 중앙 통제를 통한 역량 강화가 우선이라는 현실도 받아들였다. 선출된 도지사가 작업복 차림으로 주민 속에 들어가 지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등 제도의 원칙과 국가 형편을 함께 살피며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헌국회 2년 동안 19차례 국회를 찾아 연설했고, 재임 중 국회 연설은 25회로 전직 대통령 13명의 1인당 평균인 약 5.6회를 크게 웃돌았다. 보좌관과 관용차도 없이 사실상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한 제헌의원들은 걸어서 의사당에 오거나 전차와 자전거를 이용했고, 지방 의원들은 허름한 여관을 숙소 겸 집무실로 삼았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대통령을 추종하기보다 협의의 상대로 대하며 국가의 방향을 함께 정한 것이 제헌기 정치의 두드러진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