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작은 풍경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기척
핵심 요약
강요배의 개인전 ‘소소, 반색’이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다음 달 12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제주 4·3과 사회 현실에서 확장한 시선을 나무·바람·꽃·심해 생명에 집중한다. 해바라기와 거센 파도는 폭력의 상흔, 생명의 지속성, 자연의 양면을 함께 드러낸다.
강요배(74)의 개인전 ‘소소, 반색’이 12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제주 4·3과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나무와 꽃, 바람, 파도처럼 가까이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자연을 응시한다. 2024년 호반미술상 수상 작가전에서 높이 6.7m의 대작으로 거대한 화면에 몰입시켰던 방식과 달리, 사소하고 내밀한 풍경 속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신작 ‘영등바람’은 음력 2월 초하루 제주 한림읍 복덕개로 들어와 보름날 우도로 떠난다는 영등할망 신화를 되살린다. 바람과 바다를 관장하는 영등할망이 해산물과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고 믿어 영등제를 지내온 제주의 기억이 입춘 무렵 북서풍과 겹쳐진다. ‘나무’ 연작에서는 숲 전체가 아니라 한 그루의 몸체를 화면 중심에 세웠다. 거칠게 갈라진 나무의 표면에는 긴 세월의 흔적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해바라기-쿠르스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를 제목에 품었지만, 화면에는 전쟁의 참상 대신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말라버린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작가가 과거 동백꽃으로 고향의 아픈 역사를 표현했듯, 해바라기는 폭력이 남긴 상흔과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함께 드러낸다. 심해의 ‘혹등아귀’는 몸체를 감춘 채 큰 입과 날카로운 이빨만 내보이며 인간 중심의 인식 바깥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환기한다.
전시장에는 선명한 잎맥을 지닌 무청, 목련이 만든 그늘, 탐스럽게 익어가는 돌배나무 등 일상의 따뜻한 장면도 펼쳐진다. 한편 3.3m 크기의 ‘창파’는 모든 것을 뒤집을 듯한 거센 물결을 통해 다정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이면과 작가가 강조해온 한국미술의 기백을 보여준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핵심 멤버로 사회 현실을 다루고 1992년 제주로 돌아간 뒤 자연의 호흡을 체화해온 작업의 흐름이 이번 전시에서 한데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