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의 가벼워진 붓, 제주 넘어 세계를 향하다
핵심 요약
강요배가 학고재에서 4년 만의 개인전 ‘소소, 반색’을 열고 신작 등 28점을 선보인다. 제주의 작은 생명과 바람에서 쿠르스크의 해바라기와 심해 생명체까지 작품의 시선이 넓어졌다. 빠른 필치와 물감의 우연을 받아들인 신작은 작가와 관객이 각자 미지의 내면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는다.
화가 강요배(74)가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개인전 ‘소소, 반색’을 연다. 학고재에서 4년 만에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제주 작업실 주변의 나무와 열매, 새와 고양이를 비롯해 바람과 바다, 전쟁터의 해바라기, 심해의 혹등아귀를 담은 신작 등 28점이 나온다. 작고 미미한 존재를 향해 가까워진 시선과 한층 가벼워진 붓질이 전시 전반을 이룬다.
강요배는 물을 많이 섞은 물감을 흘린 뒤 캔버스를 눕혀 말리며 예상하기 어려운 번짐과 얼룩도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입춘 무렵 제주를 휩쓰는 북서풍을 그린 ‘영등바람’, 작업실 뜰에서 열매 하나를 두고 다투는 새들을 본 장면에서 출발한 ‘열매 한 알’이 이런 태도를 보여준다. 오래 생각하되 실제 작업은 빠르게 마치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화면 밖으로 형태를 잘라내거나 대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도 활용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중심에서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강요배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30여 년 동안 섬의 땅과 바다, 바람을 그려왔다. 2025년작 ‘해바라기-쿠르스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상에 등장한 눈 덮인 해바라기밭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작품이다. 1991년 ‘동백꽃 지다’에서 흰 눈과 붉은 동백으로 4·3의 죽음을 표현했던 시선이 35년 뒤 세계의 전쟁과 말라버린 해바라기로 확장됐다.
작가는 작품의 의미를 미리 확정하기보다 관객이 설명에 앞서 화면을 직접 느끼기를 바란다. 제목도 정답을 제시하는 문구가 아니라 이미지와 만나 상상을 넓히는 장치로 본다. 최근에는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순신이 어머니를 ‘천지’로 표현한 대목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서구 미술사의 언어보다 자기 눈과 판단을 앞세워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히 했다. 강요배에게 그림은 이미 아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미처 몰랐던 내면을 발견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