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가 길어 올린 제주의 시간과 내면
핵심 요약
강요배가 학고재에서 4년 만의 개인전을 열고 신작 28점을 공개한다. 제주의 폭포와 파도, 바람, 나무에 감정과 시간, 역사의 흔적을 담았다. 전쟁의 참상을 은유한 작품과 작업실 주변의 소박한 풍경도 함께 선보인다.
제주 출신 민중미술 1세대 작가 강요배(74)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4년 만의 개인전 ‘소소, 반색’을 열고 신작 28점을 선보인다. 폭포와 파도, 구름, 나무 등 익숙한 대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간, 역사의 흔적을 화면 위로 끌어올린 전시다. 화업 50년을 아우르는 회고전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전시장 입구의 ‘소서’와 ‘대서’는 사방으로 튀는 폭포수에 한여름 무더위의 에너지를 실었다. 500호 대작 ‘창파’와 ‘영등바람’에서는 거친 파도보다 물결을 뒤흔드는 바람이 중심에 놓인다. ‘영등바람’ 한쪽의 샛노란 빛에는 따뜻한 바람이 담겼다. 제주에서 꽃샘추위를 뜻하는 영등바람은 영등할망이 일으키는 비바람으로 여겨졌으며, 해녀들은 그 바람이 소라와 전복, 미역의 씨를 퍼뜨리고 곡식을 풍성하게 한다고 믿어 물질을 멈춘 채 맞이했다. ‘남으로’는 제주 서쪽 석양 아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구름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을 드러낸다.
강요배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림을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을 끄집어내는 일로 설명했다.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오래 보고 생각한 뒤 마음에 남겨 두었다가 낚시하듯 길어 올리는 것이 자신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할 때도 이론이나 해설보다 직관적인 느낌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식의 국물 한 숟가락으로 맛을 가늠하듯 작품도 먼저 감각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시장 안쪽에는 제주 작업실 마당에서 본 먼나무와 팽나무, 목련꽃, 길고양이, 파란 나팔꽃, 무청, 똘배가 소박한 온기를 전한다. 나무 몸통을 잘라낸 듯 담은 ‘나무’ 연작은 약 20분 동안 거침없는 붓질로 완성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격전지 쿠르스크를 다룬 그림에서는 폭격에 꺾인 해바라기로 폭력의 잔혹함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이빨의 심해어 혹등아귀도 강렬하게 그렸다. 1976년 첫 개인전을 연 그는 1980년대 ‘현실과 동인’에서 활동한 뒤 1992년 제주로 돌아가 풍경화를 이어왔다. 전시는 9월 1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