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병상 배분, 시민 숙의로 원칙 세운다
핵심 요약
중환자 병상 배분 토론에서 투표 참여자 25명 중 21명이 78세 노인을 선택했다. 경증 환자 관리와 전담병원 운영을 둘러싼 단계별 숙의에서는 취약계층 보호와 통합진료 필요성이 제기됐다. 참가자들은 희소 의료자원의 배분 기준과 절차를 국가가 미리 마련해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했다.
미지의 감염병 확진자가 5만명을 넘어 중환자 병상이 하나만 남았다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인지 저하가 있는 78세 노인과 기저질환이 없는 24세 청년 가운데 누구를 입원시킬지 논의했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토론 뒤 25명이 투표했고, 21명이 노인을 선택했다. 청년의 생존·회복 가능성을 중시한 의견과 스스로 돌보기 어려운 노인의 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맞섰다.
토론은 질문을 세 단계로 넓혀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증 환자가 입원하지 않고 외래·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따를지를 묻는 1단계에서는 30명 중 28명이 동의했다. 다만 집단 거주로 자가치료가 어렵고 의료기관 안내를 받기 힘든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구체적인 별도 지침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제기됐다. 의료자원을 위중한 환자에게 배분하려면 방역지침의 신뢰성과 세밀한 보호 대책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취지다.
2단계에서는 일주일에 세 차례 투석받는 만성콩팥병 환자를 가정해 감염병 전담병원 분리 방식과 통합진료 체계를 비교했다.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같은 병원을 이용하면서 동선을 나누는 통합진료에 11명, 감염병 전담병원 분리에 9명이 표를 던졌다. 감염 차단에 유효했던 분리 운영도 유행이 길어지고 확진자가 급증하면 의료자원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기존 환자의 진료를 제약할 수 있다는 문제가 토론에서 다뤄졌다.
이번 숙의는 국립중앙의료원 김명희 정책통계지원센터장 연구팀이 진행한 감염병 의료대응의 윤리·법적·사회적 영향 연구의 일부다. 연구팀은 시민 30명을 모집해 지난 7월 코로나19 의료대응을 사전 학습하게 한 뒤 5개 조로 토론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취약계층 보호와 환자·의료인의 권리 보장, 희소 자원 배분에 대한 국가 책임, 기준과 절차의 사전 마련·공개를 담은 윤리원칙에 높은 동의를 보였다. 위기 전에 시민 숙의를 거쳐 수용 가능한 원칙을 세우고, 실제 상황에서는 정부가 결정 배경과 현황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방향도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