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교육에서 보편 교육으로…유치원의 성장사
핵심 요약
지난해 유치원·어린이집 이용률은 94.3%로 높아졌다. 한국의 유치원은 1897년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열었으나 초기 시설은 주로 일본인 자녀를 대상으로 했다. 산업화와 1982년 법·예산 확대를 계기로 유치원은 1990년 8400곳까지 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교육받는 어린이의 비율은 지난해 94.3%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0년에는 유치원이 약 900곳에 그쳤고 이용 아동도 전체의 5%가 되지 않았다. 산업화로 경제활동 인구와 돌봄 수요가 늘고, 1982년 유아 교육 관련 법 제정과 예산 확대가 이어지면서 유치원은 1990년 8400곳으로 10년 만에 약 9배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조선 시대까지 유아 교육은 주로 가정의 몫이었다. 최초의 유치원은 부산 개항 뒤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1897년 부산에 세워졌지만 일본인 자녀를 위한 시설이었다. 1913년 설립된 경성 유치원도 같은 성격이었다. 한국인 대상 유치원은 1909년 함경북도에 문을 연 나남유치원이었으며, 선교사들도 유아 교육과 선교를 위해 교회에 관련 기관을 설치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어린이가 유치원 교육을 접하기 어려웠다. 1942년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약 175만3000명이었지만 유치원을 다닌 학생은 2만1000명뿐이었다. 해방 이후 다른 교육 제도가 정착하는 동안에도 유아 교육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 이후 산업화에 따라 가정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어린이를 맡기고 교육할 기관을 찾는 수요도 함께 커졌다.
유아 교육 기관의 등장은 유럽 산업혁명기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 서유럽 기독교 가정은 성경을, 동아시아 유교 가정은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공장 노동자가 늘자 영국 사업가 로버트 오언은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에 인격 형성 연구소와 10세 미만 대상 어린이 학교를 세웠다. 프리드리히 프뢰벨은 유아에게 맞는 놀이와 장난감을 강조했고, 마리아 몬테소리와 장 피아제는 현대 유치원 교육의 이론적 토대를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