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분담 뒤에 남은 보이지 않는 관리 업무
핵심 요약
가사와 돌봄에는 실행 업무를 계획하고 조율하는 기획 노동이 존재한다. 실행을 나눠도 판단과 지시의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면 불평등은 남는다. 평등한 돌봄을 위해서는 계획과 실행을 함께 맡고 사회도 부담을 나눠야 한다.
육아와 장보기, 청소, 빨래를 나눠 맡는 것만으로 가사와 돌봄이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살림 전반을 살피며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판단을 내린 뒤 역할을 배분하는 정신적 부담이 남기 때문이다.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이처럼 실행 노동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일을 ‘기획 노동’으로 정의하고, 일상에 존재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노동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가사를 원만하게 분담하는 가정에서도 기획 노동의 편중은 확인된다. 남편이 필요한 일을 알려주면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아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지시하는 일부터 이미 피로를 낳는 노동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직급의 두 사람이 공동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한 사람이 계속 상대의 지시만 기다리는 회사 상황에 대입하면, 업무 부담을 온전히 나눴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가 선명해진다.
돌봄과 가사가 노동이라는 인식은 자리 잡았지만, 각각의 일을 계획하고 연결하는 수고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늦게 이름을 얻었다. 가사 분담의 형평성이 어느 정도 개선된 가정에서도 기획 역할은 여성에게 남는 경우가 많다. 가사의 주체를 여성으로 보는 뿌리 깊은 인식이 실행 이전의 판단과 책임까지 여성의 몫으로 만들면서, 표면적인 분담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불평등을 이어지게 한다.
기획 노동은 자녀 교육과 생필품 관리뿐 아니라 장애인 자녀와 아픈 부모를 돌보는 과정에서도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가사와 돌봄의 평등은 한 사람이 지시하고 다른 사람이 돕는 관계를 벗어나, 계획과 실행을 함께 책임질 때 가능하다. 개별 가정이 모든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책임을 가족 내부에만 남겨두지 않고 사회가 나눠 맡는 방식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함께 제시된다.